DAY 3

‘왕이 오시는 길. 고난의 왕이 걸으신 고난과 승리의 길’ 이 오늘의 주제다. 벳바게로 향했다. 마태복음 21장에 예수께서 죽으시기전 나귀를 타고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는 길이다. 시간상으로는 유월절 오 일 전으로 (10th day of Nisan) 출애굽 당시 가족마다 양을 취한 날이다.

“이 달로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
너희는 이스라엘 회중에게 고하여 이르라
이 달 열흘에 너희 매인이
어린 양을 취할찌니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여
어린 양을 취하되”
출 12:2~3

가나안 땅에 들어와 성전이 지어지고 나서는 이날에 사방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양을 끌고 성전으로 향한다. 수백 수천 마리의 양이 벳바게(감람산)를 지나 성전으로 향하는 그 무리 가운데 모든 계명을 단번에 이루실 하나님의 완벽하고 영원한 어린양이 성전을 향해 전진하신다. 시편 118편에 예언되었고 스가랴 9장 9절에도 예언하길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스가랴 9:9

하였기에 알고 하는지 모르고 하는지 사람들은 감람 가지를 펴고 호산나라 외쳤고 이들을 조용히 시키려는 종교 지도자들에게 예수께서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 (눅 19:40)이라 꾸짖으신 것이다. 

예수께서 공생애 때 움직이시는 때와 장소는 하나도 우연이 없다. 마지막 예루살렘 입성 때 요단강을 지나 감람산을 통해 성전으로 가신 그 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하여 약속의 땅으로 들어온 길과 같은 길이다. 메시아의 모든 행동은 구약의 말씀을 이루기 위한 완벽한 경륜에 따른 움직임이시다.

감람산에서 바라본 성전

예수가 가신 길 위에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 소름 끼치는 마음이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 가운데 우리는 벳바게/감람산에서 성전을 바라보았다.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으로 인함이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9:41~44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창 22:18)라고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기 위해 유대인들의 눈을 잠시 가리우시고 우리같은 이방인이 은혜를 알게 하셨다. 그로인해 유대인들이 겪을 고난과 성전의 파괴는 주님의 마을을 찢었으리라.

우리같은 이방인이 복음을 들을수 있는건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이다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롬 11:25

감람산과 예루살렘 도시 주변에 무덤들이 셀수없이 많은것이 눈에 뛰었고 성전 주변에 죽어서 묻히는 것이 유대인들의 깊은 바람이기에 무덤 땅값이 엄청나게 비싼 것과 지금은 살 수도 없다는 설명을 해주었다. 이들은 메시아가 올 때 동쪽 미문으로 들어올 것이며 그때 가장 먼저 부활하여 메시아를 목격하는 자들이 성전 주변에 묻혀있는 자들이라 믿는다. 

동쪽 미문으로 메시아가 온다는 예언을 아는 무슬림들은 성전을 차지한 후 미문을 막아버렸고 그 앞을 무슬림들의 무덤으로 곂곂이 쌓았다. 이유인즉 율법에 따르면 시체를 만지면 부정해지기에 무덤을 지나친 사람은 바로 성전에 들어가지 못하는 유대인의 전통을 역용한 것이다. 이렇게 문을 막고 시체를 쌓아놓으면 메시아가 들어오지 못할 거라는 불쌍한 노력인데 이에 대한 예언이 스가랴에 있다.

성전앞에 무덤들
동편 미문과 그앞에 무슬림들의 무덤들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쪽 감람 산에 서실 것이요
감람 산은 그 한 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
산 절반은 북으로, 절반은 남으로 옮기고”
스가랴14:4

사실 진짜 미문은 사진에 보이는 문보다 수십 미터 아래 묻혀있다. 수천 년 동안 정권과 왕이 바뀌며 침입자들이 그전에 건물과 땅들 위에 새로 짖는 것을 반복하며 지면이 계속 높아진 것이다. 이스라엘은 토목으로 집을 짓지 않고 돌로 건축하기에 헐고 짖는 것보다 흙으로 덮고 그 위에 다시 짖는 것이 시간과 경제적으로 효율적이다. 스가랴의 예언은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 감람산을 반으로 찢고 없던 길을 내고 미문으로 들어가신다는 거다. 우린 그 산에 서서 다시 오실 예수를 상상하며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문을 벽으로 막던 그 앞에 무덤을 만들던 사람의 어떠한 계략도 그리스도를 막을 수 없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시편 24:7~8

처음 오셨을때도 성전을 들어가셨고 다시오실때도 성전에 들어가신다.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요한계시록 1:7

그리고 유대인들의 가려진 눈을 여셔서 예슈아가 메시야임을 보게 하실것이다. 

감람산쪽의 무덤들

여호사밧의 계곡, 혹은 결단의 계곡 (Valley of Decision)이라고도 불리는 곳으로 내려갔다. 무덤들로 빽빽이 채워져 있는 길가에서 인도자는 말했다. 부활은 유대인들에게 매우 중요하며 예수 공생애 당시 그들은 메시아가 나타나 죽을 자를 부활시키고 이스라엘을 회복시킨다는 기대를 안고 살고 있었다. 마르다의 오라비 나사로가 죽은 소식을 듣고 예수는 이틀 더 계신 곳에서 지체하셨다가 죽은 지 나흘째 되던 날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신다. 유대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삼일동안은 영혼이 몸 곁에서 맴돈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흘째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는 그들에게는 더 충격이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한복음 11장 25~26

유대인들은 육체의 부활과 이스라엘의 정권 회복을 기다렸다. 하지만 예수는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부활, 곧 영생을 주려 오신 것이다. 자신이 메시아라는 것을 나사로를 살리심으로 확증하시고 이들에게 자신이 부활이고 자신이 생명이라 하신다.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에스겔 37:4~5

주님은 다시 이곳에 오셔서 모든 인류를 살리시고 보좌에 앉아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신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마가복음 25:31

인도자는 지금 이 결단에 계곡에서 결단을 내리라 한다. 

‘너는 날 누구라 하느냐?’

겟세마네 동산

겟세마네에 도착했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자주 시간을 보내던 곳이고 잡히시기 전 피땀을 흘리며 마지막 기도를 하신 곳이다. 잡히시던 밤은 유월절 전날로 (14th Day of Nisan) 유월절을 준비하며 양을 잡아 함께 저녁 식사를 한다. 이날 예수는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신 거였다. 겟세마네에 왔을 때 저들이 주님과 함께 깨어 기도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만찬 때 보통 많은 양의 빵과 적어도 내 잔의 포도주를 마신다. 탄수화물과 알코올이 합쳐지면 웬만하면 못 버티는 졸음이 오는 건 다들 경험해 봤을 것이다.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마가복음 26:39

여기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신 기도이다. 원어로 보면 ‘이잔이 지나가게’ 가 let this cup pass 라 하여 나를 지나 다른곳으로 가는 뜻을 품고있다. 유대인의 혼인문화를 보면 남자가 결혼할 여자를 정했을때 남자의 아버지가 포도주를 담은 잔을 아들에게 주고, 아들은 그 잔을 신부될 사람에게 준다. 그 잔을 여자가 받으면 결혼을 하겠다고 답하는 것이다.  주님은 아버지에게서 잔을 받으셨다. 물론 그 잔은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시는 고난의 잔이기에 이잔을 옮겨달라 하신 뜻도 있겠지만, 주님의 기도는 이잔이 지나간 반대편에 그잔을 마실 신부가 있기를 바라신 것이다. 그 신부를 살리기 위해 땀이 피가되기 까지 부르짖으시며 십자가의 죽음의 잔을 마신것이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설교를 듣고있는 아이들

신부가 잔을 받으면 신랑은 거처를 준비하기 위해 떠난다. 그동안 신부는 기름으로 등불을 켜 밤낮으로 기다린다. 신랑은 거처를 빨리 마무리하여 신부를 데리고 오고 싶겠지만, 거처 준비의 완성은 신랑 아버지가 결정한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마가복음 24:36

아버지가 이제 됐다고 승인하면 아들은 신부에게 가서 나팔(shofar)을 불고 신부를 준비한 거처로 데려간다. 이에 대한 설명은 더 안 해도 될 거로 생각한다.

바리새인들과 대제사장들은  자신들의 신념과 욕망에 눈이 멀어 한밤중에 예수를 잡으러 온다. 세상의 빛을 찾으러 등과 횃불을 들고, 평강의 왕을 제압하려 검과 몽둥이를 들고 온다. 손발을 결박하고 그 입을 막아 더이상 자신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최후의 카드를 꺼낸다. 그러나 온유하신 왕은 손이 결박되기 전 그 손을 내밀어 말고의 귀를 고치시고, 더이상 말할 수 없을때 이들의 죄를 위해 용서를 구하시고 옆에 있는 죄인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시고 숨을 거두신다. 

“그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누가복음 23:34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누가복음 23:43

양의 문

성전 동쪽벽의 양의 문 (또는 사자의 문)에 도착했다. 여기에 베데스다 연못이 있고 요한복음 5장에서 예수께서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곳이다. (맨 위 지도 참조)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요한복음 5:2

유월절에 양을 끌고 성전으로 향하는 유대인들은 이 문으로 들어와 베데스다 연못에서 양을 씻긴다. 또한 병든 자들은 여기서 병이 났기를 기대한다. 이 전에 말했듯, 유월절 5일 전 유대인들은 양을 끌고 이 문으로 들어오고, 같은 날 예수는 나귀를 타고 들어오신다.

이곳에선 남자도 무릎을 가려야 해서 아이들이 웃옷을 치마처럼 두르고 있다.
베데스다 연못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한복음 1:29

히브리어로 모아딤(מועדים)은 정해진 때, 절기를 뜻한다. 예수의 공생애는 모두 정해진 때와 일치한다. 유대인들이 끌고 온 양들은 종교인들로 인해 검사받는다. 예수 또한 종교 지도자들로 인해 취조받으면 검사를 받으시나 그들은 아무런 죄를 찾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예언대로 죽으시되 정확히 유월절 아침 제사 시간에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정확히 저녁 제사 시간에 그 영혼이 몸을 떠나신다. 죄를 짊어지신 하나님의 어린양이며 동시에 원수를 단번에 이기신 사자 예수께서 양/사자의 문으로 들어가시고 난 후 이 모든 일이 일어난다.

가든툼

가든툼(Garden Tomb)에 도착했다. 예수께서 장사된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이 있는 정원으로 알려진 곳이다. 위치는 예루살렘 도시 북서편 성문 바깥쪽에 있다. 난동이 날까 두려워하는 비겁한 종교 지도자에 의해 밤늦게 겟세마네에서 잡히시고 밤새 불법 재판을 받으신 후 성벽 밖으로 끌려 나와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다.

골고다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히브리서 13:12

성문 바깥쪽에서 죽으신 것 또한 우연이 아닌 예언의 성취다.

“유월절 제사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각 성에서 드리지 말고”
신명기 16:5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시체가 안치 된것도 예언 성취다. 당시 동굴을 파는 무덤들은 부자들만이 살수 있는 고액의 부동산이다.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이사야 53:9

성찬식 예배

무덤 안을 들여다 본 후 우리는 옆에 마련된 조그만 방에서 성찬식을 하며 찬양했다. 그리스도의 빈 무덤 옆에서 떡을 때고 잔을 마신 기억은 쉽게 잊히지 않으리라.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유대인 인도자가 농담을 한다.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께 자신의 무덤을 내어 줬을 때, 요셉의 아내가 왜 그랬냐며 바가지를 긁었다. 그러자 요셉이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 사흘만 쓰신다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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