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5

Qumran Caves

쿰란에 도착했다. 쿰란은 사해의 서안쪽에 위치한 매우 건조한 평지와 산들로, 1950년대에 사해 두루마기가 발견된 곳이다. 베두인 양치기 소년이 동굴 안으로 우연히 던진 돌에 도자기 꺠지는 소리가 나서 안으로 들어가 보니 히브리어 성경 사본들이 있었다. (베두인은 사막을 횡단하며 사는 준 유목민이다.) 총 850개의 사본이 발견되었고, 기원은 주전 1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해 사본들이 발견되기 전까지 구약성경 번역의 기초는 마소라 원본으로 대략 주후 9세기에서 11세기 사이에 쓰여진 것이다. 그렇기에 사해본이 발견되기 전까지 구약성경의 신빙성에 대해 항상 의문이 재기되었고, 수없이 옮겨쓰면서 내용이 변했을 거라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하지만 마소라 원본보다 천년 이상 전에 쓰여진 사해 사본은 성경 비판자들의 입을 다물게 했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시편 22편에 대한 기록의 차이점이다. 시편 22편은 누가 봐도 부인할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메시야적 예언이다.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시 22:16

 

영어로는 “they ‘pierce’ my hands and my feet”으로 내 손과 발을 찔렀다고 써있다. 그런데 마소라 원본에 ‘찌르다’라는 단어에 대한 유대인과 개신교의 의견 차이가 있었는데, 유대인들은 이 단어가 찌르다가 아닌 ‘사자’ (lion)라 주장했다. 이유인즉, 히브리어에서 ‘사자’와 ‘찌르다’는 단어는 점 하나의 길이 차이로 달라진다. 하지만 사해 사본은 ‘찌르다’임을 확인해 주었다. 이 아름다운 시편의 필자인 다윗의 이런 예언적 묘사는 나중에 쓰여진 이사야의 메시야적 예언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이사야 53:5

사해 사본

이사야 53장은 유대인들에게 읽기가 금지된 장이다. 유대인들에게 이사야 53장을 얘기하면 대부분은 아예 들어본적이 없다. 시편 22편과 이사야 53장을 읽고 예수가 약속된 메시야라는 것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이들은 아예 단어를 바꿔서 읽던지 아니면 읽어 본적이 없는것이다.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minds become closed)된 것이라”
롬 11:25

우리는  우리에게 까지 들린 이 복음에 대해 감사해야 하지만 또한 어떤 희생을 치루고 들었는지 그 무게에 대해 두려워해야 할것이다. 

Mikveh (의식 탕)

여기 쿰란에서 구약성경을 기록하던 자들을 Essene (에세네) 라고 부른다. 이들은 기원전 2세기에 생겨난 유대교의 종파중 하나로 자기 자신들을 세상으로 부터 불리시켜 경건을 추구하던 유대 종파이다. 이 교파에 들어가려면 매우 까다로운 시험 단계를 걸쳐야 하고 보통 2년의 수행끝에 입당이 허락된다. 재미있는 것은 요한이라는 자가 에세네에 들어가려 거의 2년 가까이 수행을 한던 중 갑자기 사라졌고 얼마후 헤롯에 의해 목이 배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이들이 행하던 여러 의식 중 가장 중요한 두가지는 물로 씼는것과 성경을 옮겨 쓰는것이다. 그들이 생활하던 곳을 보면 Mikveh (의식을 행하는 탕)가 여기 저기 있다. 식사 전, 식사 후, 말씀을 쓰기 전 등 하루에 수차례씩 목욕을 하고 말씀을 적으며 에세네들을 메시야를 기다렸다. 침례요한도 광야에서 물로 침례를 주고 ‘회개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 오실 이의 길을 준비했다. 물과 말씀이라는 공통된 요소를 가지고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을때 예수가 나타나셔서 자신을 소개 하신다.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 6:35

저들이 그토록 씯고 말씀을 적으며 갈망하던 그 실채가 때가 차매 오셨다. 그들의 허덕임과 갈증을 완벽하고 영원하게 충족시킬 수 있는 진짜가 나타나셨다. 마지막 선지자가 사라지고 400년이라는 암흑의 시간이 지나면서 메시야에 대한 갈망과, 로마 정권의 탄압으로 인한 원망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메시야가 오셨다. 때가 차서 요한은 오실이의 길을 광야에서 외쳤고 때가 차서 생각지도 못한 사해사본이 발견되어 성경의 정확성에 대한 현대시대의 논쟁을 잠재웠다. 또 때가 차면 오시리라 하신이가 오실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은 더디지도, 이르지도 않다.

“나는 처음부터 일의 결과를 말하였으며
오래 전에 벌써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언하였고
내 계획이 실패하지 않을 것이며
내가 원하는 것을 모두 행할 것이다.”
이사야 46:10

Masada

마사다에 도착했다. 마사다는 이스라엘 남동쪽, 사해 남쪽 끝의 바위 절벽에 자리 잡은 고대의 왕궁이자 요새이다. 다윗이 사울의 옷자락을 배고 피신한 곳이라고도 알려진 이곳은 주 후 72년, 유대와 로마 간의 전쟁 당시 끝까지 로마군에 저항하던 유대인들이 패배를 피할 수 없게 되자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해 성안에서 전원 자살한다. 포로가 되면 아이들과 여자들은 입에 담을 수 없는 수치와 모욕을 당하고 남자들은 노예로 팔린다. 더 나아가 하나님을 예배하지 못하고 이방 신에게 억지로 무릎을 꿇느니 차라리 자유인으로 죽음을 택하기로 하여 가장들이 자기 가족을 모두 죽인 다음, 한곳에 모여 열 명을 추첨하여 그 열 명이 나머지를 다 죽이고 다시 한 명을 뽑아 아홉 명을 죽인 후 자신은 자결한다.

Visitor Center에서 곤돌라를 타고 한참 올라가야 마사다 요새에 도착한다. 높이는 약 400미터이며 넓이는 18acre (72,843제곱 미터)이다. 올라와 눈으로 보면 로마군이 점령하는데 왜 그렇게 애를 먹고 오래 걸렸는지 이해가 간다. 올라오는 내내, 그리고 올라온 후에도 유대인 인도자는 평소보다 말수가 적고 엄숙했다. 이들 유대인에게는 아마도 나치의 홀로코스트 다음으로 역사상 가장 비극의 장소일 것이다. 이들 민족은 한 많은 한국인과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여행 내내 들었다. 두 나라 다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여 끊임없는 침략과 식민지 시절을 보냈다. 다만 다른 점이라면 우리는 애국심에 의해 민족이 뭉쳤지만, 이들은 하나님에 대한 순종과 언약의 성취를 기다림으로 수난과 핍박을 견디었다. 하지만 과거뿐 아니라 현재도 이들에 대한 글로벌 커뮤니티의 일반적인 감정은 부정적이다 못해 공격적이다.

사실 난 유대인에 대한 약간의 거부감이 있었다. 사업을 하면서 경험한 유대인 클라이언트들과 동부에서 살 때 유대인들이 많이 살던 동내에서 겪은 일들이 합쳐져서 저들에 대한 인식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이스라엘 나라를 위해서는 기도해 왔지만, 이들 개개인에 대한 마음은 기도 내용과는 반대였다. 하지만 여기에 와서 여러 유대인을 보고, 저들의 역사의 현장들을 방문하고, 또 우리와 함께한 유대인 인도자와 시간을 보내며 내 인식이 정반대로 바뀌었다. 우리가 은혜로 알게 된 구속 주 메시아를 이들은 너무나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가끔은 공격적이고, 자신들을 주변으로부터 고립시키는 것은 수천 년 동안 격어온 핍박과 억울함으로 인한 본능적인 방어 자세이다. 

결정적인 것은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해 이들의 눈을 가리셨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지 않음으로 그들의 성전이 무너지고 국민은 온 세계로 흩어졌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바다의 모래보다 많은 자손을 약속하셨다. 유대인들은 이 약속 안에 이리저리 파도에 쓸려 다니는 모래 같은 수난의 예언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이런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지켜보는 하나님의 안타까운 마음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반드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실 것이다.

유대인 인도자는 우리 인생의 넘을 수 없는 마지노선을 정하라 했다. 마사다에서 로마와 싸우던 유대인들은 이방 신에게 끌려가 절하는 것보다 목숨을 잃는 것을 택했다며, 우리도 살면서 여기 이상은 절대 타협할 수 없다는 선을 정확히 그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가 사는 이 진보의 시대는 오히려 하루가 다르게 문화가 퇴보되고 기본적인 선과 악의 기준은 흐려지다 못해 사라져 버렸다. 내 자손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 아무 생각 없이 세상에 휩쓸려 가게 놔둘 수 없다. 목숨보다 하나님 말씀을 귀히 여기게 가르치는 게 부모의 최종 목적이다. 내 자녀가 아래 시편을 온 마음을 다해 고백하길 간절히 기도한다.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이러므로 나의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나의 손을 들리이다”
시63:3~4

타협 못하는 선에 대한 설교를 듣는 아이들

유대인 인도자는 마사다 발굴 시 수많은 성경 기록이 발견되었다 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요새 입구에서 발견된 가죽 위에 기록된 시편 150편이다. 150편은 시편의 마지막 장이다. 아마도 성벽을 마지막으로 방어하고 있던 자들이 죽음을 앞두고 읽었을 것이라 했다. 주의 인자하심이 목숨보다 귀한 것을 아는 자만이 죽기 전에 할 수 있는 고백이리라. 그 시편을 읽으며 너무나 무겁고 엄숙한 마음으로 마사다를 내려왔다.

“할렐루야 그의 성소에서 하나님의 찬양하며 

그의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그의 능하신 행동을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따라 찬양할지어다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소고 치며 춤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 지어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시편 150

저녁 식사 전에 잠깐 남은 시간 동안 사해에 들렀다. 모래가 아닌 소금으로 된 바닥을 맨발로 밟는 기분이 신기했고, 손끝에 묻혀 맛을 본 바다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저녁식사는 유대인들의 작은 가게들이 모여있는 Machaneh Yehudah Market에서 가이드를 따라 여러 맛집들에서 이것저것 맛보았다. 이런 곳을 SHUK라고 부르는데 정확히 한국의 광장시장을 떠올리면 된다. 실컷 웃고 떠들며 아이스크림을 피날레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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